살아 가면서/일상 이야기

여름을 보내며

오라이파이 2012. 9. 14. 16:08

한두해 겪는 여름도 아닌데도 버릇처럼 금년은 유난히도 덥다는 생각을 하는것은, 혹 나만 갖는 편견일까?

초여름부터 따가운 태양 빛으로 대지를 달구어 대더니, 삼복도 이르기전에 가마솥이 되어 버렸다.

연일 이어지는 열대야의 기세는 오픈전에서 벌써 전의를 상실해 버린듯 했다. 메스콤에서는 연일 전국에서 최고를 경신하는 대구의 수은주 높이를 발표해 댄다. 몹씨도 힘든 계절이였다. 그러하든 여름이 어제 저녁에는 처음으로 쌀쌀함을 느꼈다.

절기로 친다면 가을의 시작이라는 입추는 지난지가 이미 오래 되었고,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 마져도 지났으니 바야흐로 가을은 우리곁에 와있었나 보다. 폭염속에서 그 여름은 죽을 맛이였다. 아무리 봐도 순순히  물러갈것 같지가 않던 지독한 녀석 처럼 보였다. 그러나 거스릴 수 없는 대자연의 흐름 앞에는 그도 항거할 수가 없었나 보다.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는 명언이 있기는 하드라만 난 유난히도 여름이 싫었다. 습기찬 끈적임이 싫고, 끊임없이 공격해 오는 얄미운 모기가 정말 싫고, 느려 터지도록 나른해지는 신체 감각을 주체 할 수 없으니 더욱 싫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이 저녁마다 기다려 지는 신기루 같은게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름 내내 펼처지는 두류공원의 숱한 공연행사이다. 그중에서도 천여명 정도는 족히 누릴 수 있는 야외음악당이 있기에 한여름 밤이 참으로 행복하다. 

내노라 하며 제각기 열창으로 풀어내는 유명 가수들이 노래힐땐 나도 목청껏 따라 불렀다, 현란한 몸동작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지휘봉과 혼연일체가 된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폭풍처럼 쏟아 질땐, 숨도 쉬지 못한채 심취했다. 눈 부시도록 화려한 왈츠의 신명난 춤엔 내 몸도 따라 흔들거렸다, 진한 분칠 속에 감춰진 순수한 눈빛으로 사랑을 표현해 내는 연극을 볼땐 내가 바로 주인공이였다, 가슴에 묻어둔 한(恨)을 소리로 토해내는 창(唱)이 이어질땐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채로움의 향연들이 내 마음을 풍성하게 살찌워 주었다.

같이 노래 부르며, 열광하며, 여름 내내 나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든 신기루였다.  이 모든걸 카메라에 담아두고픈 욕심도, 한여름 밤의 그 화려함도 이젠 모두가 사라진다. 미운 오리새끼가 커서는 백조가 되었다는 동화처럼, 미운 여름이 만들어낸 숱한 아름다움을 꼭 붙잡아 두고 싶다.  내 마음이 조석변이(朝夕變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