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꺼리
오랜만에, 아니 몇십년 만에 마음먹고 헌책방을 찾아보았다
딱히 어떤 책을 찾거나 구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뭐라고 표현해야되나?
아련한 향수랄까? 아니면 요사이는 어떤 책들이 진열되어 있을까? 궁금도 하고
또 한편으론 아직도 명맥 유지나 하고 있을까? 하는 노파심도 들고...
그옛적 내가 사기도 하고, 팔기도 했던 아련한 대학시절을 떠올리면서 그 거리를 찾았다.
지금은 나의 행동반경이나 가시거리가 아니기에 완전 낯선거리가 되었다.
설령 우연히 지나쳤드래도 그냥 차창가에 스치우던 거리의 풍경이였으리라.
막상 목적의식을 가지고 찾아와 예전을 생각해보니 너무나 변해 있었다.
그래~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모두 책방 거리였는데... 문전성시로 북적였던
그 화려했던 르네상스는 어디로 가고, 겨우 너댓집만이 마주보며 을씨년스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득 길재선생의 한시(漢詩)가 생각난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풍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무작정 한곳에 발을 들여 놓았다. 주인인듯 돋보기 안경너머로 넌지시 건내다 본다.
나도 목례로 하며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책장에 눈길을 돌렸다. 악간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차례로 훑어 보았다. 빛바랜 누런 색갈이 있는가 하면, 새책마냥 뽀오얀,
그 색깔만으로도 세월의 흔적이 완연하게 구별된다.
낯익은 제목에 마치 옛친구를 만난듯 반가움이 깃들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지는
제목도 눈에 뜨인다. 이런 책이 아직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오래된 책들도 있고, 무슨 사연으로
주인 품을 떠나 아곳에 진열되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책도 보인다.
불현듯 옛추억이 떠오른다. 학창시절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가슴에 품고간 책한권을 건넨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의 기억이다.
청마 유치환 선생이 사랑하는 시인 이영도에게 20년 동안이나 보낸 애틋한 사랑의 편지를
세상에 공개한 책이다. 당시에는 무명의 출판사를 정상의 반열에 올려놓는 베스트셀러였다.
그 명성만큼이나 이책은 지금도 서점에 가면 있을것이다.
맞어! 이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 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젠 목표가 생겼다. 다시 처음부터
차근히 찾고 싶었다. 두어시간이나 샅샅이 뒤졌지만 애석하게도 그날의 보석은 발견하지를 못했다.
책방문를 나서는 내 손에는 "이효석 문학집" 이란 오십년전 쯤이나 된듯한 낡고 조그마한
책한권이 쥐어져있다. 어쩌면 십여년뒤 쯤이나 즐거운 이 하루가 생각날 줄도 모를 일이다.